[출판사 리뷰]
옷이 들려주는 이야기, 옷에 담긴 우리 삶과 문화
보림출판사의 다큐멘터리 그림책 ‘작은 역사’ 시리즈 다섯 번째 책 《말하는 옷》이 출간되었다. ‘한반도 복식 문화사’라는 부제 그대로 한 권의 그림책에 담은 ‘우리 옷의 역사’다. 아득한 옛날 구석기인들이 동물 털가죽을 벗겨 몸에 걸친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옷을 입는 동물’인 우리가 스스로를 왜, 어떻게, 무엇으로 치장하며 살아왔는지를 스물한 개의 흥미로운 주제에 담아 글과 그림으로 꼼꼼하게 엮었다.
저고리와 바지, 치마, 두루마기로 대표되는 우리 옷의 양식적 특징과 변천 과정뿐만 아니라 모자·신발·장신구 등 치레거리, 의복의 구성과 스타일의 변화, 무명·비단·가죽·모피 따위 재료와 제작 기술의 변화, 복식에 담긴 세계관과 미의식, 풍속, 유행, 외래 문물과의 교류와 수용과정 등 복식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두루 살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책이 ‘사람은 왜 옷을 입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점. 옷의 기능과 역할을 찬찬히 짚어보면서 옷이란 무엇이며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세계 복식사의 맥락 속에서 우리 복식 문화를 바라보고 보편성과 특수성을 두루 살피려 한 시도도 새롭다. 구석기인들이 가죽을 잇는 바느질을 시작하고 신석기인들이 직조 기술을 획득한 뒤, 바느질과 옷감 짜기라는 두 가지 기술이 결합하며 본격적으로 옷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지구상의 여러 민족들이 기후와 문화에 따라 저마다 나름대로 옷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이 섬세한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전개된다. 한 장의 천을 허리나 어깨에 둘러 입는 방식, 천 두 장을 이어 머리를 꿰는 판초 형태의 옷, 튜닉으로 대표되는 통 모양의 옷, 카프탄이나 두루마기처럼 여며 입는 옷…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전통 복식들을 살펴보는 즐거움과 함께, 옷의 기본적인 구조와 계통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흔히 남자 옷, 여자 옷이라고 생각하던 바지와 치마가, 실은 각기 북방 유목문화와 남방 농경문화를 대표하는 옷이라는 흥미로운 사실과 함께, 우리 옷의 원형이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북방 유목문화의 영향을 받은 '여미는 옷'이자 '윗옷과 아래옷이 나뉜 옷'인 바지저고리라는 사실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전문가의 눈과 손으로 차근차근 재구성한 한반도 복식 문화
우리 옷의 원형이라 할 삼국시대 복식이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치며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상세하게 드러나며, 삼국시대뿐 아니라 고려시대까지도 여자들이 바지를 입고 다녔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다.
한중일 유물을 기반으로 고구려 귀부인들이 입던 색동치마와 당나라와 일본의 색동치마를 비교하여 고대 동북아시아를 풍미했던 유행 패션을 재구성한 대목이나,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몽수를 쓰고 다녔다는 고려 여인들을 통해 모래바람 부는 사막기후에서 탄생한 베일이 실크로드를 거쳐 널리 퍼져나가는 과정을 밝힌 대목은 특히 흥미롭다. 목화가 전래되며 바뀐 것들, 조선 복식에 미친 유교의 영향도 재미있고, 서양 복식의 전파, 산업화와 세계화 문제, 일상복 자리에서 밀려난 전통 복식의 변화와 모색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구려 여인들의 주름치마, 삼국시대 사신들의 멋스러운 바지저고리, 섬세한 무늬가 돋보이는 통일신라 귀부인의 옷, 모자만큼이나 커다랗던 고려시대 족두리,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누비옷과 모피옷, 조선 선비의 단아한 옷차림, 조선 후기 여인들의 관능적인 옷차림,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아이들의 옷, 화려한 혼례복… 지엄한 임금의 옷에서 천대받던 무당의 옷까지, 수만 년 전 구석기인들의 거친 털가죽 옷에서 첨단 소재의 스포츠웨어까지, 흥미진진한 복식 열전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고구려 절풍과 조우관을 비롯하여 신라 금관·고려와 조선의 갓·정자관·복건·풍차·족두리·굴레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모자와 상투머리·쪽머리·얹은머리·종종머리·단발머리 등 변화무쌍한 헤어스타일, 옷차림에 멋을 더해준 비녀·동곳·댕기·허리띠·노리개·귀걸이·목걸이·주머니 따위 장신구들도 빠짐없이 다루었다.
한국 복식사 분야의 권위자인 이화여대 의류학과 홍나영 교수가 집필과 고증을 맡았고, 주목받는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이장미가 사료와 유물을 토대로 꼼꼼하게 재현한 그림과 각종 도판들로 지면을 다채롭게 꾸몄다.